산수화 사생의 변화와 불변

From:금교Author: 2024-05-27 16:43

 20세기 산수화의 변혁에서 사생은 하나의 중요한 명제였다. 통상적인 의미에서 사생은 일반적으로 서양의 풍경화를 사생하는 방식을 배우고 참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일종의 서양화적 개념이다. 사생은 한편으로는 중국인들에게 새로운 회화 방식을 제공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화 전통에서 ‘사조화(師造化)’의 회귀를 촉진하였다.

 사실 중국 전통 산수화의 ‘사조화’도 사생의요소를 담고 있는데 회화 역사에는 당나라 말기에서 오대(五代) 시기 때 화가 형호(荆浩)가 태행산에서 소나무를 사생했다는 기록이 있고, 황공망(黃公望)이 부춘산과 왕리(王履)가 화산에서 사생했다는 기록도 있다. 20세기 초반 전통적 가치관을 고수했던 화가들이 산수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사생하는 행위가 이 유형에 해당됐다. 이런 유형의 사생은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산수화의 가치 체계를 이어오고 있으며 작품은 화가의 마음속 이상적인 산수세계에 종속되어 있었다. 또 작품의 경지와 심미는 중국의 ‘천인합일(天人合一)’ 사상관을 산수화에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생은 사생을 통해 청나라 말기의 전통 산수화로 대표되는 틀에 박힌 절차와 방식을 바꿔 작품을 유연하게 만들 수 있었으며 더불어 청나라 말기 이후 금석서예가 그림에 녹아들어 화면의 운치가 흘러넘쳤다. 이것은 중국 산수화가 20세기 초반 전통 자체를 변화시킨 결과였다. 예를 들어 치바이스(齐白石)는 일찍이 오출오귀(五出五歸)를 통해 산수화에서 먼저 자신의 풍격을 찾았는데, 이는 그가 8년 동안 만리 길을 걸으며 사생한 경력에 힘입은 ‘사조화’의 완전한 전형이었다. 그리고 황빈홍(黄宾虹)은 수년간의 사생을 통해 수만 장의 밑그림을 쌓았고 이후 10년 동안 경성에 숨어 지내면서 정제하고 승화시켜 작품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20세기 산수화 사생의 주류를 이루는 서양식 풍경 사생법을 착용한 이런 유형의 사생 방법은 중국과 서양 회화 예술을 융합하여 장단점을 보완하고 중국화의 필묵으로 사생하는 것이었다. 이런 사생 방식은 예술이념과 함께 일부 신흥 문화 엘리트들에게 받아들여져 보급되었다. 일찍이 중국과 서양의 융합을 실천한 사람은 영남화가 천수런(陳樹人)과 가오젠푸(高劍父), 가오치펑(高奇峰) 형제였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간접적으로 서양화를 공부한 이들은 그동안 그린 산과 돌과 식물 등을 스케치북에 서양식으로 사생한 것이 특징이었다. 이후 쉬베이훙(徐悲鸿)과 린펑몐(林风眠)은 유럽으로 직접 유학을 가서 순수한 서양식 회화 이념과 사생 방법을 국내로 가져왔다. 이때부터 중국에는 서양화의 사생법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중국과 서양을 통합한 방법의 산수 사생의 특징은 현실에 직면하여 현재의 실제 생활을 표현하는 것을 중시했다. 이러한 유형의 사생은 서양의 투시법을 참고하여 경치의 구조와 조형을 잡는 것을 강조하고 현장에서 사생을 할 때 작가의 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감정에 주의를 기울였다. 서양식 산수 사생법을 통해 창작한 중국과 서양의 융합적 성격을 지닌 작품은 20세기의 중국 특수한 정세와 결합해 더욱 발전했으며 산수화의 현대적 변형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국가의 문화와 예술에 관한 정책의 영향으로 중국화 개조운동이 시작되면서 전통적인 중국화가 실생활을 반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돼 중앙미술대학은 한 때는 중국화 학과를 폐지하고 채묵화과로 변경되기도 했다. 전통파 산수화가들은 농촌, 공장, 저수지, 명산대천을 답사하면서 사생을 했다. 비록 ‘새 술병에 담긴 오래된 술’의 상황이 자주 발생했지만 그들의 사생 관념은 주관적으로 변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표현은 대부분의 주제에서 삶의 실제 상황을 묘사하고 가능한 한 객관적 기초하에 취사선택하여 작품은 비교적 강한 삶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으며 예술의 형식 언어 측면에서 볼 때 정교하고 사실적이며 화면 모양은 엄격하고 필묵을 사용하여 큰 변화가 거의 없었다. 후페이헝(胡佩衡)의 구이린 사생 작품 <화산>, 베이쉐스(白雪石)의 <월아산> 등이 전통적 필묵의 언어를 표현한 현실 장르의 대표작이다.

 이와 함께 서양식 사생법을 구사하는 중국과 서양의 융합형 산수화가들은 외형적인 형식이나 소재의 현실적 의미뿐만 아닌 필묵의 언어를 최대한 순수하게 표현함으로써 작품의 심층적인 가독성을 높이려 했다. 그리고 화면의 필요에 따라 이화접목식을 과감하게 옮겨 화면의 주관성을 더욱 강화했다. 리커란(李可染)은 말년에 작품의 묵운의 아름다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작품의 심미적 경지를를 높이고 전통 산수화에 ‘이대관소(以大觀小, 산수화의 공간을 표현하는 데 일종의 사고과정과 방법)’법을 적용한 것은 그의 중국과 서양의 융합을 점차 심화시키려는 유익한 시도였다. 중국과 서양의 융합형 화가들의 산수 사생은 20세기 후반에 전통미학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였다.

편집:董丽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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