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도(蜀道)는 험난하지만 그 운치는 무궁무진하다
From:금교Author: 2023-09-07 15:30
“아이고, 얼마나 높고 험준한가(噫吁嚱,危乎高哉)! 촉도는 하늘로 올라가기 보다 험난하네(蜀道之難,難于上青天).”
이백(李白)이 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온 명작 <촉도난(蜀道難)>은 지극히 호방하고 낭만적인 필치로 촉도[蜀道, 고대 장안(長安)에서 촉지(蜀地)로 통하는 길을 의미함]의 험난함을 모두 썼다. 촉도가 친링(秦嶺)과 다바산(大巴山)을 지나니 길이 얼마나 험난하지 짐작할 수 있다. <촉도난>은 이백이 장안에서 친구를 촉지로 떠나보낼 때 걱정하여 지은 시라는 설도 있고 험난한 촉도로 시국을 은유했다는 설도 있으며 이백이 강산에 감탄하기 위해 이 시를 지었다는 설도 있다. 이백이 이 시를 지은 초심은 알 수 없으나 그 후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이 <촉도난>때문에 끊임없이 촉지를 찾아 촉도를 다녔다.
“잠총(蠶叢)과 어부(魚鳧) 시절 나라를 열던 것은 참 아득했네(蠶叢及魚鳧,開國何茫然).”
고대의 촉도는 노선이 많았고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현대인들이 젠먼(劍門) 촉도를 많이 찾는다. 젠먼 촉도는 이백의 시에서 자주 언급되는 곳이었다. 젠먼 촉도 명승지는 쓰촨(四川)성 광위안(廣元)시 젠거(劍閣)현 북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젠먼관(劍門關)과 추이윈랑(翠雲廊) 두 개의 인접한 5A급 관광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선 고적이 매우 많다. 그 중 고촉국(古蜀國) 유적인 삼성퇴(三星堆) 유적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백의 <촉도난> 개편에 쓰인‘잠총과 어부’는 모두 전설 속의 고촉국 국왕의 이름이다.
삼성퇴 유적의 발굴은 고촉국의 신비와 영광을 보여준다. 쓰촨에 오면 촉도에 오르기 전에 먼저 이백의 시를 가지고 삼성퇴박물관을 방문하여 신비롭고 장엄한 청동신수(青銅神樹), 청동입인(青銅立人), 기괴하고 변화무쌍한 황금·청동 가면을 보는 것이 좋다. 그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모양의 가면은 전설에 나오는 잠총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서쪽 태백산(太白山)으로 난 조도(鳥道)를 통해서 아미산(峨眉山) 꼭대기를 질러갈 수 있노라(西當太白有鳥道,可以橫絕峨眉巔).”“누른 학조차도 날아 지나지 못하고 원숭이도 오르자니 걱정이라(黃鶴之飛尚不得過,猿猱欲度愁攀援).”
쓰촨에는 네 가지 절묘한 경치가 있다고 하는데 즉 주자이거우(九寨溝)의 기이함, 아미산의 수려함, 칭청산(青城山)의 유유함과젠먼의 험난함이다. 등산과 탐험을 즐기는 관광객이라면 젠먼 촉도관광지대에 들어가 냐오도(鳥道)와 위안나오도(猿猱道)를 걷는 것이 좋다.
냐오도와 위안나오도의 이름은 <촉도난>에서 유래했다. 막상 관광지의 냐오도와 위안나오도를 걸으면 이백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냐오도는 산벽을 따라 매우 좁고 가파르며 여러 곳을 수직으로 올라가야 하며 위안나오도는 약간 넓고 절벽을 따라 뚫어있어 등반 시 돌벽에 부착된 쇠사슬을 손으로 잡고 보호줄을 묶어야 한다. 두 코스의 전체 길이는 길지 않지만 한 번 오르면 끝까지 가야 하는 아슬아슬한 길이다. 두 길을 내려오는 관광객들은 항상 이백의 시 처럼 “손으로 가슴을 만지고 긴 한숨을 내쉬며(以手撫膺坐長叹)”너무 아슬아슬하다며 긴 숨을 내쉰다.
“땅이 꺼지고 산 무너져 장사들이 죽은 뒤 사다리와 잔도(棧道)가 서로 연결됐네(地崩山摧壯士死,然後天梯石棧相鉤連).”
젠먼 촉도는 풍경이 아름답고 나무가 무성하여 천연적인 산소바(oxygen bar)인데 관광객들이 자연의 품에서 걸어다니면 온몸의 치유를 받을 수 있다. 관광지대에는 냐오도와 위안나오도 외에도 금우협(金牛峽) 잔도, 천제협(天梯峽) 잔도 등 놓칠 수 없는 여러 코스가 있다.
금우협 잔도의 명칭은 옛 금우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옛 금우도의 개척은 서한(西漢) 양웅(揚雄)의 <촉왕본기(蜀王本紀)>에 기록되어 있다. 진혜왕(秦惠王)이 촉을 벌하려다가 높은 산으로 가로막는 것에 괴로워하자 사람을 보내 금을‘배설할’수 있는 거대한 석우(石牛) 5마리를 촉왕(蜀王)에게 선물하고 촉왕이 장사 5명을 보내‘금우’를 맞이하기 위해 길을 열었다. 이 것은‘오정개산(五丁開山)’이란 이야기이고 이 길이 바로 옛 금우도다. 또한 진혜왕이 예쁜 여인 5명을 선물했고 오정이 여인을 맞이하고 돌아오는 길에 큰 뱀을 만나 동굴 속으로 들어간 뱀을 끌고 가다가 산이 무너져 땅이 갈라지고 장사가 죽고 산이 5개로 갈라져 촉으로 들어가는 길이 통했다는 설도 있다. 이 전설은 바로 이백이 시에 쓴 이야기다.
잔도 위를 걸으며 높고 험난한 산을 넘다 보면 촉도의 어려움은 걷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 개척하는 데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설에 은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 사다리와 잔도가 서로 연결됐다는 이면에는 고대 촉인들이 험난한 산을 벗어나려는 열망과 고대 노동자들의 노고와 희생이 숨어 있다.
“검각(劍閣)은 높고 우뚝하니 한 명이 관문(關門)을 지키면 만 명도 열지 못한다(劍閣崢嶸而崔嵬,一夫當關萬夫莫開).”
촉도의 험난함은 젠먼관에 있다. 관루(關樓)에 도착하니 양쪽 봉우리가 우뚝 솟아 하늘에 기대어 검과 같고 관루는 그 사이에 서서 위엄을 보인다. 최초의 젠먼관 관루는 몇 번의 변고를 거쳐 이미 훼손되었고 복원된관루는 또 원촨(汶川) 지진으로 크게 파손되어 현재의 관루는 2009년에 건립되었다. 관루는 명나라의 건축양식을 모방하여 지붕이 3층이고, 사방에 헌창(軒窗)이 있으며 회랑으로 뚫려 있고 추녀가 아치형이다.
비록 당시의 관루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이곳은 젠먼관의 표식이 되었으며, 그에 대한 전설은 여전히 대대로 전해지고 있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이 건설을 지휘했고 강유(姜維)가 결사적으로 수호했으며 건설 이후 봉건왕조가 끝날 때까지 젠먼관은 정면으로 뚫린 적이 없었다. 이백은“한 명이 관문을 지키면 만 명도 열지 못한다.”라고 감탄했으며, 두보(杜甫)는“하늘이 위험을 설치하고 검문의 험난함이 천하에 웅거하다(惟天有設險,劍門天下壯).”라고 했다.
젠먼관에 올라 사방의 무성한 숲과 절벽을 바라보며 그 옛날 살벌했던 전쟁 장면을 목격한 관문이 지금은 조용히 서 있다. 역사의 연기와 구름이 모두 사라졌지만 무궁무진한 역사적 전설과 문화적 운치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남아 있다.
편집:董丽娜
문장과 그림에 대한 저작권은 원 저자에게 속하며 해당 내용을 삭제하고 싶을 경우 따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